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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znable

나는 이상한 성격이 있다. 책을 읽으려면 시간이 부족하니 출퇴근 시간을 활용해서 읽어야 한다. 그럴 때 너무 유명한 책을 읽고 싶지 않아 하는 성격이다. 누구나 이름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책 읽는 내 모습을 누구도 보지 않았으면 한다. 그런 책들은 이미 읽은 척하고 싶은 허영심이 있는 걸까. 아직도 읽지 않았다는 것이 부끄러운 걸까. 허영심도 부끄러움도 뭔가 진짜 내가 느끼는 느낌에는 와닿지가 않는다. 그보다 화장실에서 혼자 눈썹정리하는 모습을 누군가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느낌과 가깝다. 밀리의 서재 오디오북은 이런 내 성격에 도움이 됐다. 불안을 다 읽고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까 찾아다니던 중에 유명한 책 인간관계론이 눈에 들어왔다. 오디오북으로 들으면 내가 인간관계론을 읽고 있다는 것을 아무도 알지..

핸드폰을 알뜰폰으로 바꾸면서 받게 된 혜택이 밀리의 서재 서비스 구독이었다. 밀리의 서재에서 하는 서비스 중 하나는 오디오북인데 최근 유튜브도 침착맨 원본박물관처럼 긴 영상을 듣기만 하는 식으로 즐기던 나에게 좋은 서비스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밀리의 서재에서 제공하는 오디오북 중에는 책 한 권을 모두 읽어주지는 않는 책들이 많다는 것, 그래서 나는 결국 읽고 싶은 책은 종이책으로 읽게 되는 편이지만 한두 권이라도 편하게 오디오북을 듣는 건 다시 책을 찾는 계기가 되었다. 밀리의 서재 서비스를 이용 중이라면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 알랭드 보통의 불안이다. 오디오북 중에는 AI TTS가 읽어주는 책들도 있는데(나는 그런 책들도 좋아하지만) 불안은 전문 성우가 읽어줘서 듣기에 좋다. 지금껏 블로그에 책 ..

어떤 선택의 재검토 한국어로는 이렇게 거창하고 무거운 이름이지만 영어 원래 제목은 The Bomber Mafia로 험악하기도 하고 위트 있기도 하다. 이 책은 영화 오펜하이머가 개봉하기 3개월 전쯤 수원역 앞 알라딘 중고서점을 둘러보다가 집어 들게 되었다. 조만간 개봉할 오펜하이머를 기대하는 중이었고 읽을 책이 뭐가 있을까 찾아다니는데 폭탄이 그려진 표지, 어떤 선택의 재검토라는 제목은 원자폭탄에 대한 윤리적인 관점의 책인가? 싶은 인상을 주었다. 또는 오펜하이머와 관련된 역사적인 내용일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영화를 보기 전에 읽어두면 좋을 것 같았다. 재미있게도 모두 틀렸다. 원자폭탄보다 이전 시기의 이야기가 적힌 책이었다. 전쟁에서 원자폭탄을 개발해야 하나 개발하지 말아야 하나, 써야 하나 쓰지 말아..

신선하고 재미있는 책이지만 누구에게나 추천하기는 애매한 책이다. 이 책은 혜인 용근 대엽과 서점 구경을 하다가 혜인이에게 선물 받은 책이었다. 책 선물을 해주겠다고 했을 때 이 책을 골랐던 이유는 그냥 물고기를 좋아하는 편이고 흔치 않은 제목이고 추천사가 굉장했기 때문이다. 최근에 서점 주인이 추천하는 책들을 진열해 놓는 서점을 갔었다. 거기서도 이 책을 매우 강하게 추천했었다. 지금은 내가 성경이에게 추천해 줘서 읽고 있는데 일상적인 쉬운 문장으로 쓰여있어서 금방금방 읽고 있는 편이다. 나는 수집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책의 도입부에서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인물이 가진 수집에 대한 열정을 광적이게 보일 수 있을 정도로 묘사한다. 그래서 이 책을 더 흥미롭게 읽기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제목은 물고기..

처음 이 책을 읽어야지 생각했을 때는 부제 진보와 보수, 문제는 프레임이 다를 신경 쓰지 않았다. 그보다 귀여운 느낌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제목만 보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겠거니 생각했다. 나와 같은 생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한다면 당혹스러울 수 있다. 굉장히 대놓고 정치 얘기를 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누구에게도 읽어보라고 추천할 수 없는 책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웬만하면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프레임이 정치적으로 어떻게 쓰이고 그러한 프레임에 갇히기 전에 이건 프레임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채는 예시를 많이 보여준다. 이는 꼭 정치뿐만 아닌 많은 상황에 더 자유로운 사고를 하기 위해 도움이 되는 내용이었다. 나는 생각의 깊이보다 생각의 넓이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국부론은 군생활 당시에 읽은 책이다. 이렇게 시간이 남아날 때 평소라면 읽을 생각도 안 할 책을 읽어놓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선택한 책이다. 경제 지식이 없는 나도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들어봤다. 국부론을 펼치며 어디 그 유명한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해 얼마나 대단하게 설명할까 기대했지만 책을 덮으며 들었던 생각은 다음과 같았다. 이 양반은 왜 이렇게 농사를 좋아하지? 적어도 내가 국부론을 읽으며 받은 느낌은 농사 찬양이 대부분이었다. 상업은 이미 있는 가치를 여기저기로 옮길 뿐 실제로 가치가 생겨나는 것은 농업이라는 주장을 강하게 하는 책이었다. 이런 책이 왜 그렇게 유명할까 이해가 안 될 정도였다. 너무 오래된 책이라서 그런가 싶었다. 너무 오래된 책이라서 그렇다는 것은 어느 정도 맞는 생..

미학 오디세이를 읽고 다음으로 읽었다고 기억하는 책이다. 미술사가 궁금해서 읽었던 미학 오디세이지만 책을 다 읽고 들었던 기분 중에 하나는 다음 한 문장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다르고 많은 생각들이 있구나 그리고 지금 우리가 상식이라고 알고 있는 것들이 생각의 역사 위에 쌓아 올려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후 그런 생각의 역사를 인문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사람은 모두 자라온 환경과 시대가 다르고 집중하는 포인트와 생각하는 깊이도 다르다. 한 사람은 여러 시대에 살아볼 수 없고 여러 환경에서 한평생을 살아볼 수도 없어서 평생 해볼 수 없는 생각들이 있다. 그런 생각들을 인문학 서적을 읽으면 간접경험해서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 사람의 생각을 모두 적어놓은 책을 읽는 것도..

최근 내가 어떤 책들을 읽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기분에 기록해 두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써본다. 첫 책은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다. 사실 이 책을 읽은지는 10년 정도 된 것 같다. 내용이 잘 기억나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못하다고 답해야 할 것이다. 나에겐 이 책을 읽게된 과정에 스토리가 있어서 책의 내용을 읽는 것뿐 아니라 그 스토리까지가 독서였다고 느껴진다. 또는 이 책을 읽었던 것이 지금도 진행되는 중인 그 스토리의 일부이기도 하다. 이 글은 독서가 주제이니 일단은 스토리를 독서에 포함시키는 걸로 하자. (혹시 그런 과정은 읽고싶지 않고 책 이야기만 보고 싶다면 다음 구분선부터 읽으면 된다.) 공학도인 내가 미학이라 이름붙은 책을 펴도록 이끈 것은 "미" 보다는 "멋"이었다. 중3 무렵 친형의 영..